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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1,370회 작성일 2013-06-14 11:26
[매거진S] 전설의 야생마 김주성(76회), 풍운아 이천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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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S] 전설의 야생마 김주성(76회), 풍운아 이천수를 만나다

기사입력 2013-06-14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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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사동의 스튜디오에서 대기 중이던 이천수가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김주성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의 등장 때문이었다. 천하의 이천수도 대선배 앞에서는 ‘폴더 인사’를 했다. “스튜디오를 찾지 못해 부동산사무소에 가서 물어보고 왔네요”라며 웃은 김주성 총장은 최근 부활을 외치고 있는 후배에게 반가운 악수를 건넸다. “천수 요즘 잘해서 보기 좋다. 아픈 데 없지?” 이천수가 쑥스럽게 답했다. “선배님들이 걱정해주신 덕에 잘하고 있습니다. 어제 훈련 중 약간 부상이 있는데 괜찮습니다.”

이들이 만난 이유는 30주년을 맞은 K리그를 위해서다.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는 올해 성인이 됐다. 프로축구연맹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레전드를 선정했고 그 안에 ‘아시아의 야생마’이자 ‘로얄즈의 전설’ 김주성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임의탈퇴라는 축구인생의 역경을 딛고 K리그로 돌아와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천수도 반가운 선물을 받았다. K리그 클래식 올스타 미드필더 부문 3위로 건재한 인기를 과시했다.

레전드와 레전드를 꿈꾸는 두 남자의 만남. 열다섯 살 차이의 그들은 그라운드에서 서로 동료나 상대로 만난 적은 없다. 두 사람의 길은 판이하다. 김주성은 무명의 학창 시절을 극복한 대기만성형 스타였고, 이천수는 청소년 시절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김주성의 인생이 부침 없는 오르막길이었던 것과 달리 이천수는 기복 심한 롤러코스터 인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똑같다. K리그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프로축구의 존재를 증명하는 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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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예비 전설, 닮은 듯 다른 그들의 만남



Q. 김주성 총장이 기억하는 이천수에 대한 첫 기억은 뭔가요?


김주성:
천수가 최태욱, 박용호와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불리며 전국대회를 휩쓸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건 천수가 고려대에 재학했을 때였어요. 당시 고려대의 조민국 감독이 과거 대표팀 시절 동고동락했던 동료였어요. 만날 때마다 이천수의 특별한 재능을 칭찬하더군요. 그래서 날을 잡아 직접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천수는 독특했어요. 과거의 선수들에게 특별한 재능이란 게 있었어요. 그 선수 고유의 색이랄까, 국민들이 딱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있었죠. 이회택, 차범근, 김재환, 김진국 등 이름을 얘기하면 떠오르는 특징 말이에요. 현대 축구로 전환하면서 선수들의 그런 색이 사라져가는데 천수는 보기 드물게 자기 걸 갖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자기 색을 지닌 선수라 감동하며 지켜봤습니다.

Q. 이천수에게 김주성 총장하며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요?


이천수: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하는 시기에 선배님 은퇴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제 머리가 어지럽던 시기였어요. 프로 진출과 대학 입학을 놓고 기로에 있었습니다. 같이 대학에 가기로 했던 친구들이 프로를 선택하며 당황스러웠고 어려운 가정사도 섞여 있었어요. 고려대 입학을 선택하기 전에 조민국 감독님의 권유로 함께 전국을 여행했습니다. 최종 목적지가 강원도 속초였어요. 김주성 선배님의 은퇴경기가 열리는 자리였죠. 사실 은퇴경기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편집자 주-김주성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은퇴경기를 치른 선수다.) 그때까진 축구 선수로 내가 얼마나 클 지를 예측하지 못하던 시기였지만 적어도 은퇴를 할 즈음엔 저런 모습으로 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많은 축구팬들이 경기장을 채워서 열린 화려한 은퇴식이 정말 멋졌어요.

Q. 김주성이라는 선수의 당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게 있어요. 1992년에 일본 세이부사에서 만든 '세이부 축구'라는 오락실용 비디오 게임이 큰 인기였는데 세계 8개국 팀의 실존인물을 모델로 주인공이 등장했어요. 당시 대한민국 대표가 긴 머리의 김주성 총장이었습니다.

이천수:
아, 저 기억나요. 맞아요. 오락실 가면 했는데 그게 선배님이었어요. 대각선으로 크로스 올려서 헤딩골 넣던 그 게임이죠. 와 신기하네요.

김주성:
요즘 친구들은 모르겠죠? 많지는 않았지만 모델료도 받았습니다. 많이는 못 받았어요.(웃음) 당시엔 그런 내용의 계약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던 시기라. 그때 놀란 건 일본은 이미 축구 컨텐츠를 그런 식으로 상업화시켰다는 거죠. 워낙 생소한 문화라서 신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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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오락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 '세이부 축구' 마라도나, 게스코인, 스킬라치 등 당대최고의 선수들과 한국의 김주성이 팀 선택 플레이어로 구성돼 있다

김주성과 이천수, 두 축구인의 현역 시절 궤적은 닮은 부분이 많다. 성공적인 선수 생활의 성과는 신기할 정도로 같다. 첫번째는 프로 데뷔 시즌 신인상과 베스트11을 모두 수상했다.(김주성 1987년, 이천수 2002년) 두번째는 A매치 데뷔전에서 득점을 했고 이어진 경기에서도 골을 넣어 A매치 데뷔 후 2경기 연속 득점 기록도 갖고 있다. 측면에서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호쾌한 플레이와 수준급의 골 결정력은 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김주성과 이천수의 대표 이미지다.


김주성:
또 없나요?(웃음) 전 축구를 하면서 다이나믹한 걸 선호했어요. 아기자기함 보다는 시원한 플레이를 지향했어요. 거기서 만족감을 느꼈죠. 팬들이 지향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괜찮은 선수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이천수:
선배님에겐 미치지 못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관중이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지향합니다. 공격적이고 골이 많이 나는 플레이, 세트피스에선 과감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면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승패를 떠나 홀가분해요. 그런데 그런 경기를 못 하면 제 자신이 미워요. 돈을 주고 보러 온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욕심이 많다, 혼자 한다’는 지적도 들었지만 저 역시 선배님처럼 제가 추구하는 축구가 만족스럽습니다. 공이 왔을 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었고 남은 선수 생활의 목표도 그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두 사람의 길은 달랐다. 김주성은 대기만성형 스타다. 힘든 가정환경, 늦게 시작한 축구로 인해 학창시절 동안 제대로 된 우승 한번 못했다. 당시 전국대회 4강에 들지 못해 막혔던 대학 진학도 청소년 상비군에 뽑혀 간신히 해결했다. 하지만 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88팀에 선발된 것을 계기로 스타덤에 올랐다. AFC 올해의 선수를 3년 연속 수상했다. 87년 대우로얄즈에 입단한 뒤 K리그에서도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이천수는 화려한 등장 후 굴곡 심한 인생을 살았다. 고교 시절부터 각광 받은 그는 이미 10대에 A대표팀에 승선했다. 청소년, 올림픽, A대표를 겸임했을 정도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었고 22세의 나이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다. 하지만 두번의 임의탈퇴를 경험했고, 그 중 2009년 전남드래곤즈를 나오는 과정에서의 사고로 축구계와 팬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2013년 힘겹게 K리그로 돌아왔고 현소속팀 인천유나이티드에서 속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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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엘리트로 순탄하게 가며 높이 평가 받는 게 좋기도 하지만 역경을 겪어 보고, 어두운 시간을 경험하면 그 역시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팬들의 기대치엔 양면이 있어요. 좋은 거 뒤엔 나쁜 것도 오죠. 신기한 건 그렇게 논쟁하는 과정에서 선수가 관심을 받게 돼요. 좋은 이미지로, 혹은 나쁜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어요. 자신의 기대치로만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그 평가를 긍정적으로 해줬으면 합니다. 그것 때문에 안 된다며 지탄하기보다는 선수가 실수를 하고 힘든 과정을 겪는 것도 지켜봐 주면, 그걸 잘 극복했을 때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되는 겁니다.

이천수:
저는 이제는 좀 순탄하게 갔으면 하고요.(웃음) 선배님이 좋게 얘기해주시지만, 솔직히 지금도 선배님들 뵙는 게 죄송할 때가 많아요. 최고의 순간도 겪어봤고, 최악의 순간도 격어 봤지만, 이제는 저도 선배 축에 드니까 성숙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과거를 바꿀 순 없으니까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미래를 잘 준비해서 마지막엔 꼭 밝게 웃고 싶습니다.

주성:
대중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 선수라는 길이 좋게만 보이진 않아요. 일반인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보겠지만 위험한 길입니다. 선수로서의 생명이라는 게 인생의 1/5도 안 돼요. 화려한 시간은 그 반도 안 되고. 젊은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가기까지는 노력과 천부적 소질이 함께 해야 결실을 맺는데 20대엔 화려함의 이면에 있는 위험에 자주 노출됩니다. 그런 역경을 뚫고 재기를 해서 정상의 위치로 돌아오기까지 노력한 건 박수를 쳐주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이제부터 이천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메시지가 될 겁니다. 일반인으로서 30대는 이제 사회에서 부딪히는 나이입니다. 이전에 격동의 시간을 겪었으니까 앞으론 잘 할 겁니다.

이천수가 임의탈퇴로 힘들어 하던 시절, 당시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이었던 김주성 총장은 정몽준 명예회장으로부터 “이천수를 도와주라”는 특별한 미션도 받았었다. 돌아온 이천수는 언행일치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K리그에 새로운 활력소가 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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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천수는 선수 뒤에 남은 인생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소중하고 값진 경험을 했어요. 국가대표로 나라를 대신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가 있을 거예요. 실망도 줬지만 여전히 팬들의 기대치가 높다는 부분이 천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 같습니다.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돌아오면 잘 할 거라 예상했어요.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줘도 본인 의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결국 천수 본인이 해낸 거예요.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고 이겨내서 선배로서 고맙습니다.

이천수:
선배님이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셨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워도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한 선배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K리그에서 다시 공을 찬다는 게 실제로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너무 오래 쉬어서 힘든 것도 사실이고, 쉬다 보니까 아픈 곳도 있지만 훈련을 위해 운동장에 나갈 때마다 행복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모든 이들에 대한 보답이니까요.

Q. 6월 말에 이천수 선수의 첫 아이가 태어납니다. 김주성 총장님은 세 명의 아이가 있으시죠? 선수생활 끝 무렵엔 가족으로 인해 힘이 날텐데요?

김주성:
축구 선수는 특수한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적입니다. 일반인들과는 생활 패턴이 다르죠.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지만 가족이라는 부분을 별개로 생각하지 말고 축구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가정 생활도 원만하게 행복하게 사랑스럽게 즐겁게 갈 겁니다.

이천수:
와이프가 첫째 뒤에도 계속 아이들을 낳고 싶다고 해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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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현재 이천수, K리그의 과거를 회상하다


Q. 이천수가 기억하는 K리그의 첫 장면은 무엇인가요?

이천수: 솔직히 K리그를 많이 보러 가진 못했습니다. 저를 가르치셨던 감독님들이 데려가질 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운 좋게 역사적인 경기를 현장에서 봤어요. 1997년에 부천SK와 울산현대의 경기를 보러 갔는데 후반에 웃긴 장면이 나왔어요. (윤)정환이 형이 파울로 끊어진 상황에서 울산이 내보낸 공을 다시 돌려준다는 게 그만 골대 안으로 들어간 거예요. (김)병지 형이 엄청 화내던 게 생각나요. 그 뒤에 (김)현석이 형이 부천 골문 앞에 가서 넣으려고 하는데 외국인 선수들이 계속 막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천의 니폼니시 감독님이 울산에게 골을 내 주고 시작하자고 했는데 외국인 선수들한테만 전해지지 않았던 거죠. 기사를 보니까 K리그의 대표적인 황당사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제일 처음 기억나요.

Q. 스토리도 풍성하고 관중도 지금 못지 않았던 그때를 K리그의 첫 르네상스라고 합니다.

이천수: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관중이 더 많았어요. 그 많은 관중의 이미지가 생생해요. K리그가 30주년이 됐는데, 식당도 그 정도 역사면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올 텐데 오히려 관중이 준다는 건, 나를 포함한 선수들에게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어요. 선수가 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일들, 지역에서 봉사하는 게 부족하다는 것. 한만큼 이룬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안되면 행정 탓이다, 구단 탓이다 하는데 선수들 책임도 있습니다. 모두가 노력해서 1명의 관중이라도 더 모셔와야 합니다. 지역 내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가고,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의 친선 경기를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K리그 보러 오세요’가 아니라 ‘저희가 가겠습니다’라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대표팀 경기에 관중이 많은 걸 보면 분명 축구 좋아하는 분들은 많거든요. 대표팀 경기에 댓글들 달리는 거 보면 축구팬은 진짜 많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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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롤모델로 삼았던 K리거는 누구입니까?



이천수:
윤정환 형요. 부천SK가 고향인 인천에서 가깝기도 해서 친근했지만 정환이 형은 정말 공을 잘 찼어요. 상대 입장에서 미울 정도였죠. 한창 때는 패스가 들어가면 거의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줬어요. 슈팅도 좋고, 세트피스도 좋고. 문제는 신체조건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롤모델로 삼았어요. 조건이 비슷하니까요. 시간이 지나고는 제 축구스타일이 변하긴 했는데 어렸을 땐 그런 플레이메이커를 좋아했어요.

Q. 그렇다면 진짜 프로라고 느꼈던 선수는 누구인가요?

이천수:
유경렬 선수. 경렬이 형은 뭐랄까. 울산에 같이 있을 때 보면 사고방식이 진짜 프로였어요. 몸 관리도 철저하게 했고요. 살이 잘 찌는 타입인데 뛰는 건 기가 막히게 잘했어요. 후배들이 정말 배워야 할 건 투지죠. 골대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리는 모습. 요즘 한국엔 그런 절박함이 필요한 거 같아요. 운동장에서 겁 없이 자기 몸을 날리는 걸 보면서 제가 잠에서 확 깨는 거 같더라고요. 나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대구FC에서 최고참 선수로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아요. 지금 팀 성적은 안 좋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는 베테랑이 있으면 분명 나아질 겁니다.

Q. 많은 리그를 경험했어요. 역사, 그리고 전설적인 선수들을 유럽은 어떻게 대우하던가요?

이천수:
아무래도 유럽은 자신들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잘 포장하더라고요. 스페인이나 네덜란드에서는 60, 70년대에 활약한 선수들을 때가 되면 다시 조명해줍니다. 경기장으로 불러 팬들 앞에서 박수를 받게끔 해주고요. 페예노르트에서 뛸 때 지오 반 브롱크호스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아스널,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마지막에 결국 폐에노르트로 돌아왔거든요. 그때 ‘이렇게 멋지게 끝내야 한다. 자기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쌓여서 역사가 된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그런 역사가 있어도 잘 포장을 안하고, 선수들도 멋진 마무리를 위해 돌아가겠다는 것보다 물질적인 데 더 비중을 두다 보니 그런 의식이 적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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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전설 김주성, K리그의 현재를 바라보다



Q. K리그 위기론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축구 행정가이자 스포츠마케팅 전공자로서의 시각이 궁금합니다.

김주성:
위기라는 부분은 축구시장이 산업화되지 못하며 나타나는 관례입니다. 한 순간에 문제가 불거진 것은 아니에요. 과거부터 온 한국 축구의 현주소입니다. 현 시점의 위기라는 건 사실 현실과는 동 떨어진 평가가 있습니다. 산업화시킬 컨텐츠, 시장 형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컨텐츠를 키우는 걸 몰입해야 해요. 지금 현 시점에 그 문제가 노출된 건 이젠 고민하고 움직일 때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위기론을 인정하면서도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선수, 지도자, 행정가, 구단이 모두 힘을 모으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팬들이 축구를 사랑할 동기부여를 만드는 것이 준비해야 할 방향입니다.

Q. K리그에겐 늘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나요?

김주성:
스포츠라는 게, 종합적인 요소들이 작용이 됩니다. 단순히 스포츠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부분, 경제, 교육, 정치까지 다 맞물려 있습니다. 다른 분야는 과거의 진통을 겪으며 한발씩 앞으로 나아 갔는데, 스포츠는 과거를 반복한 감이 있죠. 86년, 90년, 94년에 월드컵이 끝나고 언론매체에서 기회다, 살려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실행을 못했습니다. 이제는 이해관계 논리에 의한 찬반 구조가 돼선 안 됩니다. 모두가 미래를 위해 한발을 옮겨야 합니다.

Q. 과거의 프로축구는 지금 이상으로 박진감 넘치고 팬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게 축구인들과 일부 마니아라 아쉬움이 듭니다.


김주성:
과거엔 개인의 역량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개개인의 능력도 필요하지만 팀 스포츠로서의 조직력, 선수들 간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 승패가 결정됩니다. 일반 팬들의 시각에선 개인 능력에 대한 볼거리가 과거에는 만족스러웠던 반면 지금은 흥미도가 떨어지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관중들의 보는 수준도 따라가야 해요. 축구의 흐름에 대한 이해, 배경지식을 갖고 대표팀과 K리그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더 깊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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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스포츠에서 진행된 K리그 30주년 레전드 BEST11 투표. 포지션별 최다투표를 받은 11명의 선수중 8명이 2002월드컵 멤버다

Q. 이번 레전드 투표에서도 결국 2002년 멤버들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이흥실, 이기근, 윤상철, 김도훈, 샤샤, 김대의 등은 별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요.

김주성:

레전드는 영광된 호칭입니다. 팬들이 평가해준 결과물이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고 기쁘네요. 그런데 축구에 대한 수치는 산술화되지 않습니다. 어떤 선수가 가장 우수하고 K리그를 이끌어오며 최고의 레전드였나, 그 자질과 자격이 충분한가 하는 데 누가 정확히 정의 내릴 순 없습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했을 때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우상이라면 그 사람도 레전드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일반 팬들이 평가하는 영향력도 중요하지만 K리그 30년을 두루 경험했던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이 평가했으면 좀 더 인정할만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해요.

Q. K리그 첫 영구결번 대상자입니다. 레전드의 첫 의미를 각인시켜주셨는데요.

김주성:
한국 축구 30년을 이어오면서 프로에 몸 담았던 선수만 국한해 레전드라 해선 안 됩니다. 프로축구를 지탱했고, 출범을 위해 준비해 온 분들도 보이지 않는 레전드입니다. 저는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시간이 지나 좋은 여건 속에 부와 명예를 얻으면서 운동을 했습니다. 감사히 생각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은퇴 기념 경기도 했고 그것이 라이브로 중계됐습니다. 영구결번에 대해선 부산 대우 팬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축구를 했던 그 자체로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는 과거를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역사를 인정하고 제대로 평가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축구계 분위기가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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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연속 AFC 올해의 선수상 수상' '아시아의 삼손' '야생마' '최초의 영구결번'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별중에 하나였던 김주성을 향한 애칭이자 찬사다 (사진 : 연합뉴스)


전설과 현재, K리그의 미래를 그리다

Q. K리그가 유럽 리그처럼 자리잡기 위해선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김주성:
축구의 기술적인 부분은 2차적 문제입니다. K리그가 국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어요. 축구가 우리 삶의 일부이자 중요한 매개체로 정착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2002년 전후로 해서 한국 축구에 대한 국제 무대의 문 자체가 개방돼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해외 무대를 노크하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K리그로 오면 그 역시 발전의 한 부분이죠. 내부가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는 힘도 강해집니다.

이천수:
현역 선수로서 바람은 더 많은 팀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행정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안정된 환경에서 많은 팀들이 멋지게 경쟁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축구장에 관중들이 다 들어올 수 없어서, 유럽처럼 밖의 선술집에서 TV를 보면서 하나가 되는 그림을 그려요. 맥주 한잔씩 들고 응원하는 열정적인 모습이요. K리그 클래식이 대중의 코드고, 일종의 종교 같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돼야 후배들도 미래에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배님들 덕에 지금의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제가 미래에 후배들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게 더 나아진 환경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Q. K리그의 구성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김주성:
연고지 정착입니다. 지역 팀에 대한 지역민의 애착을 강화시키는 게 제일 중요해요. 첫번째이자 열번째 숙제입니다. 축구팀도 지역의 일부란 생각으로 주민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잇게끔 뿌리를 내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바르셀로나처럼 지역의 팀이 자랑이 될 수 있게 노력해야죠. 그거면 첫 단추와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거라 봅니다. 연고지 강화 없이는 어떤 미래도 논할 수 없습니다.

이천수:
저는 기업구단에 속해 있다가 이번에 처음 시민구단의 선수가 됐습니다. 시민들에게 다가가다 보니까 듣게 되는 게, 많은 분들이 축구 선수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선배님 말씀처럼 먼저 해야 합니다. 다가가야 합니다. 시민들이 편하게 생각하면 경기장으로 오게 됩니다. 축구에 대한 마음의 문을 우리가 열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를 놔야죠. 사회봉사 활동을 나가니까 인천 구단의 관중수가 확실히 늘어요. 올 시즌 리그 전체적으로 관중수가 늘고 있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좋습니다. 저 하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제가 돌아와서 플러스 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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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이벤트

6월 21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K리그 30주년' 2013 K리그 올스타전이 열리게 됩니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에서 선발된 대표 선수들이 열띤 승부를 펼치게 될텐데요. 과연 이날 첫 득점을 올리는 선수는 누구이며 승리팀은 어디일까요. 첫 골을 기록할 선수와 승리팀을 맞혀 주시고, 이날 경기를 펼칠 선수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이 두가지 모두를 맞힌 분들 중 한 분을 추첨하여 '김주성-이천수 친필 사인'이 담긴 K리그 공인구를 선물로 드립니다.
(ex : 이근호 / 챌린지 / 이근호 선수 최고의 활약을 펼쳐주세요)

응모기간 : 6월 14일 00시~21일 19시
당첨자 발표 : 6월 마지막주 기사 하단 공지
(현재 올스타전 출전 선수가 일부 확정이 안된 관계로, 선수 전원이 발표된 이후의 중복 응모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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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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